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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7-12-20 14:10:36, 수정 2017-12-21 15:54:58

[이문원의 쇼비즈워치]‘택시운전사’, 아카데미 예선 탈락한 당연한 이유

  • 지난 14일 아카데미상을 시상하는 미국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 측에서 외국어영화상 부문 예선 통과작 9편을 발표했다. 그러나 그중 한국 출품작 ‘택시운전사’는 없었다. 지난 1963년 신상옥 감독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가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부문에 첫 출품된 이래 무려 54년 동안 29편째 전패를 기록하게 된 순간이다. 심지어 한국영화는 지금껏 후보작 5편을 꼽는 최종심사도 아니라 예선마저 통과해본 일이 없다.

    한국영화계에 있어 아카데미상은 사실상 마지막 남은 비평적 도전 처, 세계 유수영화상 중 유일하게 본선을 뚫어본 적 없는 최종 관문이다. 세계 3대 국제영화제인 칸과 베니스, 베를린에선 각각 경쟁부문 선정은 물론 감독상 이상 수상도 모두 해봤다. 특히 베니스영화제에선 김기덕 감독의 ‘피에타’가 숙원의 최고상 황금사자장까지 거머쥔 바 있다. 그런데 유독 아카데미상에선 예선통과부터 좌절되고 만다.

    이에 대해 늘 반복되는 해석이 있다. 한국영화가 미국서 알려지기 시작한지 불과 얼마 안 된 탓에 인지도 부족으로 문제가 생긴단 해석이다. 물론 상황 판단 자체는 맞다. 그러나 이를 아카데미상 불발 이유로 갖다 붙이기엔 무리다. 당장 올해 외국어영화상 예선 통과작들만 봐도 알 수 있다. 칠레의 ‘판타스틱 우먼’, 독일의 ‘인 더 페이드’, 헝가리의 ‘온 바디 앤 소울’, 이스라엘의 ‘폭스트롯’, 레바논의 ‘인설트’, 러시아의 ‘러브리스’, 세네갈의 ‘펠리시테’, 남아프리카공화국 ‘더 운드’, 스웨덴의 ‘더 스퀘어’. 수 십 년 전부터 미국시장에 노출돼온 스웨덴이나 독일영화 등은 그렇다 쳐도, 한국영화가 세네갈, 레바논, 남아프리카공화국 영화들보다 미국서 인지도가 떨어진다고 보기엔 확실히 무리가 있다.

    ‘진짜’ 원인은 사실 다른 곳에 있다. 여타 국제영화제들의 경우 출품을 원하면 몇 편이고 신청이 가능하고, 몇몇 영화제에선 프로그래머가 직접 한국으로 찾아와 출품 신청작들을 관람하기까지 한다. 그렇게 경쟁력 있겠다 싶은 영화들을 영화제 측에서 알아서 골라 갖고 가는 시스템이다. 그러나 아카데미상 외국어영화상 부문은 다르다. 해당 국가를 대표하는 영화 관련 기관이 단 한 편을 ‘스스로’ 선정해 출품하는 형식이다. 그만큼 출품작 선정을 맡은 기관, 한국의 경우 영화진흥위원회 측 심사위원들 안목과 역량이 최대 관건이다. 한국영화는 지금 이 과정에서 매번 실패하고 있다 봐야한단 얘기다. 아카데미상을 제외한 모든 세계 유수영화제에서 한국영화가 호응을 얻고 있는 마당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럼 대체 영화진흥위원회 측 출품작 선정 과정에서 그간 무엇이 잘못돼있었던 걸까. 일단 올해 낙방한 ‘택시운전사’부터 살펴보자.

    ‘택시운전사’는 액면 그대론 얼핏 아카데미상과 잘 맞아떨어질 것처럼 보인다. 서구 백인 저널리스트가 타 국가 정치군사적 위기현장에 뛰어들어 현지인들과 우정을 나누며 위험을 무릅쓰고 취재한단 설정은 아카데미상에서 이미 수차례 효과를 발휘한 바 있다. 1984년 작품상 등 7개 부문 후보로 지명돼 3개 부문을 수상한 ‘킬링 필드’가 대표적이다. 1986년 남우주연상과 각본상 후보로 지명된 ‘살바도르’도 있다. 딱히 PC적 측면에서 올바르다 보기 힘들지만, 속성상 서구 선진국 백인층 선민의식을 자극하는 측면이 있어 늘 반응이 좋다. 미국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 회원들 중 과반을 훌쩍 넘는 다수는 백인 남성층이다.
    그런데 여기서 ‘택시운전사’가 이들 유사 콘셉트 영화들과 다른 결정적 요소가 있다. ‘킬링 필드’는 실제 캄보디아 킬링 필드 상황으로부터 불과 5년 뒤 등장한 영화다. 영화가 등장한 때에도 캄보디아는 베트남이 점령한 캄푸치아 공화국 시절이어서 여전히 혼란스러웠다. 1986년 당시 ‘살바도르’ 무대 엘 살바도르는 더 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이런 관점에서 보면 올해 외국어영화상 예선통과 영화들 실마리도 풀린다.

    특히 눈길이 가는 세네갈, 레바논, 남아프리카공화국 영화들 역시 ‘킬링 필드’나 ‘살바도르’처럼 ‘현재진행형’ 소재들이다. 레바논 출신 기독교인과 팔레스타인 난민 간 모욕죄 법정공방을 다룬 ‘인설트’, 남아프리카 원주민 마을 배경으로 전통과 현대 간 마찰을 묘사한 ‘더 운드’, 아들 수술비 마련을 위해 세네갈 유흥가를 떠도는 클럽가수 얘기 ‘펠리시테’, 모두 자신들 ‘현재’의 갈등과 혼란, 딜레마를 다룬 영화다. 그만큼 지금, 같은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란 동시대적 긴장감이 형성된다. 동시에 그렇게 혼란스럽고 열악하며 위험천만한 조건 속에서 치열한 삶의 현장을 그려낸 영화작가에 높은 점수를 주게 된다.

    ‘택시운전사’는 그와 다르다. 영화 속 위기와 혼란상황은 벌써 37년 전이다. 그 사이 한국은 경제적으로 선진국 반열에 올라섰고, 안정된 체제 하에서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나라가 됐다. 이런 나라에서 ‘수 십 년 전 고통스럽고 혼란스러웠던 과거’를 얘기하는 식으론 해외 입장에서 딱히 주목할 이유가 생기질 않는다. 일단 절실함과 긴박함이란 차원에서 와 닿지 않는다. 심하면 이미 민주주의가 성립된 부자나라의 자화자찬 격 회고로만 보이게 된다. 출품 후보로 거론되던 ‘국제시장’도 ‘변호인’도 다 마찬가지다. ‘우리’가 뼈저리게 느끼거나 자랑스러워할만 한 소재와 ‘해외’가 반응하는 소재는 다르단 얘기다. 내수용으로서 의미 있고 호응이 좋은 것과 수출용, 그 중에서도 영화상을 노리는 것의 차이를 이해할 필요가 있다.

    이 같은 상황은 비단 ‘택시운전사’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간 한국영화 출품작들은 대부분 비슷한 문제점들을 갖고 있었다. 일단 최소 30년 이상 전 ‘옛’ 얘기들이 너무 많았다. ‘왕의 남자’ ‘사도’ 등 사극부터 일제시대 배경 ‘밀정’, 한국전쟁 소재 ‘태극기 휘날리며’ ‘웰컴 투 동막골’ ‘고지전’, 그리고 이제 ‘택시운전사’까지. 어떤 의미에선 한국역사에 대한 소개서처럼 보일 정도다. 해외역사 소재란 언제나 진입장벽이 높다. 자신들에 친숙한 서구유럽 등지 역사와 문화를 반영한 경우가 아니라면 으레 그렇다. 결국 영화로서 접근성보다 ‘한국을 알린다’는 취지에 더 가까웠다고나 할까. 당연히 영화는 국가소개 팸플릿과는 차이가 있다.

    한편, 일단 현대물이란 조건은 갖췄어도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는 출품작들도 많았다. 먼저 한국이 배경이 아닌 영화들이 있었다. 북한 사정을 다룬 ‘크로싱’과 동티모르 아이들에게 축구를 가르친 김신환 전 축구선수 실화 ‘맨발의 꿈’도 출품작으로 선정됐었다. 전자도 상당부분 그렇지만, 후자는 사실상 전혀 관련 없는 나라 현실을 담고 있는 터라 이런 영화를 왜 ‘한국 출품작’으로서 뽑아줘야 할지부터 애매해진다. 그럼 남는 건 서구에서 이해하기 힘든 불교사상 소재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 하필 미국 중심종교인 기독교 비판요소를 담은 ‘밀양’, 그 나머지가 ‘마더’ ‘피에타’ ‘범죄소년’ ‘해무’ 정도다. 결국 근 15년 출품역사 중 상식선에서 가능성 있었던 건 4편 정도에 불과했단 얘기다.

    한편 ‘택시운전사’엔 또 다른 문제도 존재한다. 애초 저 정도 저명한 영화상에 출품할 정도 퀄리티가 됐느냐 문제다. 지난주 대표적 영화매체 씨네21에선 24명 평론가들 대상으로 2017년 한국영화 베스트 10을 집계해 발표한 바 있다. 집계결과는 1위부터 차례로, ‘밤의 해변에서 혼자’ ‘남한산성’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 ‘꿈의 제인’ ‘아이 캔 스피크’ ‘밤섬해적단 서울불바다’ ‘그 후’ ‘더 킹’ ‘박열’ ‘노무현입니다’ 등이었다. ‘택시운전사’는 이 중에 없었다. 물론 씨네21 평론가들 의견이 전부도 절대적인 것도 아니겠지만, 그래도 공통된 비평적 관점의 윤곽 정도는 보여준다. 사실 ‘택시운전사’는 딱히 대단한 찬사를 받은 영화는 아니었다. 대중 반응이 좋았을 뿐이다. 비평적 견지에선 이렇다 할 작가적 개성을 발견하기 힘든, 다소 진부한 방법론으로 만들어진 상업영화란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아무리 미국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가 상대적으로 대중친화적 성격이 강하다 해도, 여전히 영화계에서 잔뼈 굵은 전문 인력들로 구성된 단체다. 영화 전문가들이다. 비평계 평가기준과 일치하는 부분이 많다. 그런 점에서 애초 ‘택시운전사’는 고려대상이 되기 힘든 조건이었다고 보는 게 맞다. 이를 방증하듯, 미국비평계에서도 호오 정도를 가리는 로튼로마토 같은 곳에선 ‘택시운전사’ 평가가 95%로 높지만, 이를 엄밀하게 점수로 나누는 메타크리틱 차원으로만 가도 점수는 팍 깎인다. 69점이다. ‘그냥 볼만한 수준’ 정도로 본 것이다. 아니 그 이전, 이미 자국 내에서조차 한 해 동안 두세 편도 아니라 10편 내에도 꼽기 어려운 영화를 대표로서 출품한다는 게 과연 성과를 바라고서 한 결정이 맞는지부터 의문이다.

    이 같은 비판 앞에 영화진흥위원회 측 유일한 하소연이라면, 그나마 출품 신청한 영화들 중에선 ‘택시운전사’가 가장 가능성 있었단 점 정도일 것이다. 실제로도 그렇게 볼 수 있다. 출품 신청작 11편은 ‘남한산성’ ‘눈발’ ‘브이아이피’ ‘앙뚜’ ‘원스텝’ ‘특별시민’ ‘가려진 시간’ ‘프리즌’ ‘택시운전사’ ‘살인자의 기억법’ ‘악녀’ 등이었다. 이런저런 조건들에 맞지 않거나, 애초 평가가 좋지 않았던 영화들이 많다. 그러나 그건 당연한 일이다. 그동안 아무리 해봤자 아카데미상을 돌파해본 적이 없는데 누가 영화진흥위원회 측 안목과 전략을 믿고 출품을 신청하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다 또 떨어지면 영화 이미지만 나빠질 뿐이다. 아닌 게 아니라 이번 ‘택시운전사’가 떨어지면서도 마찬가지로 영화 자체를 폄하하는 반응들이 많았다. 결국 영화진흥위원회 측 수없는 실패사례들이 이 같은 ‘비협조’ 분위기까지 낳았다는 것이다.

    아카데미상은 더 말할 필요조차 없이 영화업계 차원에서 상당히 중요한 승부처다. 한국영화 전체 홍보 차원에서 그렇다. 그 시상식을 세계 120여 개국에서 2억5000만 명 이상이 시청한다. 결과만 달랑 전해지는 3대 국제영화제와 다르다. 그 자체로 영화애호가들에겐 엄청난 쇼다. 여기서 이름이 불린다는 건 홍보 차원에서 사실상 그 어떤 상과도 비교할 수가 없다. 거기다 후보에만 올라도 해당영화의 미국 내 배급사정 자체가 달라진다. 여기서 반향을 일으키면 여타 한국영화들에 대한 관심으로도 옮아갈 수 있고, 계단효과에 의해 여타 시장들로의 배급도 수월해진다. 이런 엄청난 기회를 아무런 비용부담 없이 대표선수(?) ‘선정’만 잘 해도 얻을 수 있는 조건이란 얘기다. 절대 놓칠 수 없는 기회다.

    먼저 아카데미상이 과연 외국어영화상을 놓고 무엇을 원하는지부터 연구가 필요하다. 그중에서도 한국처럼 정치경제사회적으로 비교적 안정된 아시아권 나라에선 또 무엇을 원하는지 따로 관찰이 요구된다. 이미 1960~70년대부터 미국인들에 소개돼 친숙한 중국 무협영화나 일본 사무라이영화가 아닌 다음에야, 대부분 평범한 중산층 윤리관 기반으로 사사로운 개인적 갈등과 딜레마를 다룬 현재 시점 영화들이 유리하단 결론이 선다. ‘그린 파파야 향기’ ‘결혼피로연’ ‘음식남녀’ ‘굿 바이’ 등 많은 사례들이 존재한다. 심지어 이란 같은 복잡한 나라에서조차 ‘씨민과 나데르의 별거’ ‘세일즈맨’ 같은 동일계열 영화들을 원한다.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 출품작 선정을 한국관광공사나 국가브랜드위원회 역할로 착각하지만 않는다면, 이처럼 결론은 간명해진다.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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