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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8-01-07 14:16:00, 수정 2018-01-07 14:16:00

[김수길 기자 G세상 바로보기] 양강체제 구축한 넥슨號 ‘신의 한수’ 뒀다

  • 지난 세밑 넥슨 내부 사정에 정통한 한 인사는 기자에게 “엔엑스씨(NXC, 넥슨의 지주회사)에서 현 박지원 대표 체제에 변화를 주려고 하는데, 후임자로 거론되는 이정헌 부사장의 이력이 국내에 국한된 까닭에 정작 실행에 고민이 많은 것 같다”고 귀뜸했다. 결국 넥슨(이하 넥슨코리아를 지칭)은 새해 시작에 맞춰 이정헌 사업총괄 부사장을 신임 대표로 내정했다. 대신 박지원 대표에게 해외 사업을 맡겼다. 있는 그대로 해석하자면 이정헌 신임 대표에게 아직 못미더운 면이 있다는 뜻이지만, 2조 원 규모로 매출을 불린 넥슨에 내수 시장이 그 만큼 중요해졌다는 의미도 된다.

    실제 이정헌 대표 내정자의 이력은 국내와 사업이라는 두 단어로 함축된다. 2003년 넥슨에 신입사원으로 입사한 그는 선임들에게 성실함으로 인정받았다고 한다. 2000년대 중반 그와 함께 일한 한 인사는 “회의마다 내놓는 아이디어를 보면 사업에 대한 감이 있는 것 같았다”며 “게임 업계에도 샐러리맨 신화가 나올 법했다”고 소회했다.

    2000년대 초반부터 10년 남짓 넥슨은 강영태 운용본부장과 민용재 국내사업본부장 등 내로라하는 실무형 인재들로 넘쳐났다. 그 틈새에서 이정헌 대표 내정자는 묵묵히 실무를 익혔다. 경쟁자라고 할 만한 선배인 박지원 대표가 이미 일본으로 건너가 더 큰 시장을 경험하고 있던 것과는 상당히 대조적이었다. 넥슨 내부에서도 “박지원 대표는 경영진들이 대놓고 키운 사례”라고 부르는 반면, 이정헌 대표 내정자를 놓고서는 “밑바닥부터 철저하게 배워 기초가 튼튼하다”고 말한다.

    이정헌 신임 대표는 2008년 7월 넥슨이 ‘던전앤파이터’로 유명한 네오플의 지분 60%를 1500억 원에 인수하면서 도약의 시기를 맞았다. 넥슨 품에 안기기 직전 해인 2007년 네오플은 매출 448억 원에 영업이익이 331억 원에 달하는 알짜 회사였다. 그 무렵 넥슨의 한해 매출이 2500억 원 정도인 점을 감안하면 네오플 인수는 일종의 모험이었다. 이정헌 대표 내정자는 최승우 전 넥슨 일본법인 대표(현 넥슨 명예회장)를 주축으로 ‘던전앤파이터’의 중국 진출을 꾸리던 모습을 지켜보면서, 네오플의 국내 입지를 보전(保全)하는데 집중했다. 주인이 바뀐 게임의 흥행 열기가 사그라질세라 그는 동분서주했다. 이후 넥슨의 또 다른 모험으로 불린 ‘피파온라인’ 시리즈까지 손을 대면서 일약 넥슨의 주요 게임을 두루 거친 유일한 인물이 됐다. 2014년에는 사업본부장으로 승진했고, 1년 뒤 사업총괄 부사장으로 직행했다.

    하지만 국내에서 승승장구한 이정헌 신임 대표의 이력은 오히려 활동 반경을 제한하는 요인이 됐다. NXC 경영진들은 순수 국내통이라는 그의 이력에 범(汎) 넥슨그룹의 사업 대부분을 위탁하는 것은 무리라고 본 듯하다. 이렇게 해서 나온 보완책이 바로 해외 사업 전체를 지휘하는 글로벌 최고운영책임자(COO)라는 직함이다. COO 명찰을 달게 된 박지원 대표는 앞서 2006년 일본에 둥지를 틀면서 넥슨의 숙원이던 도쿄 증시 상장에 필요한 밑그림을 하나씩 그렸다. 주요 업무는 경영기획과 사업추진이었다. 회사의 자금 흐름을 꿰뚫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2009년 여름 기자가 넥슨 일본법인을 들렀을 때 당시 박지원 실장은 작은 회의실에서 일본 직원들과 토론이 한창이었다. 일본 근무를 전후로 넥슨의 유럽과 미국 법인에서도 두루 경력을 쌓았다. 해외로 반경을 확장하던 넥슨에는 금지옥엽(金枝玉葉) 같은 존재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2014년 3월 말 박지원 대표가 한국 법인의 수장으로 복귀하자, 선임 배경에 대해 ‘김정주 넥슨 창업자가 가장 신뢰하는 인물 중 한 명’이라는 전언이 있을 정도였다. 이에 화답하듯 ‘박지원호(號)의 넥슨은 정체된 시장 환경에서도 매년 상승세를 이어갔고, 2017년에는 국내 게임 기업으로는 처음으로 매출 2조 원 시대를 열었다. 나라 밖에서 벌어들인 수입이 절반을 훨씬 상회하면서 ‘안방 호랑이’라는 오해도 말끔히 떨쳐냈다.

    새해 첫 인사를 놓고 업계 일각에서는 넥슨이 양강 체제로 재편하면서 책임 경영제를 구축했다고 평가한다. 각자 이력을 축적해온 분야에서 최적의 성과를 내도록 유도하면서, 전임과 후임 대표의 소중한 경험을 낭비하지 않고 연계할 수 있도록 길을 터줬다는 점에서 ‘신의 한수’로 보인다.

    그 동안 넥슨은 대표 자리를 교체할 때마다 ‘말없이 간다’는 지론을 유지했다. 떠나가는 이는 수긍하고 보내는 쪽도 이유를 따지지 않는 게 관행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다르다. 아래로부터 보고를 받던 입장에서 이제 헤쳐나가는 위치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최승우 명예회장이 대표직에서 물러난 뒤 중국과 아시아, 북미를 돌면서 여전히 넥슨에 직·간접적으로 기여하고 있듯이 박지원 대표가 넥슨의 세계화를 어떻게 선도할지 주목할 만하다. 내수를 담당하는 이정헌 신임 대표와 공정 경쟁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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